[제1회 내가느낀질경이] 우수상_이경철님
작성자
질경이우리옷
작성일
2019-07-03 09:32
조회
1538
[제1회 내가느낀질경이] 우수상_이경철님
정확한 내 이름은 나도 모른다.
그저 ‘쑥색저고리’라고 불러준 터라 나도 그리 알고 있을 뿐이다.이름이 없는 축들도 많은걸 보면 나는 나은 편이다.주인 내외가 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먼저 옷의 색깔대로 성을 정하고 기능이나 특징을 잡아 편한 대로,마음대로 이름을 붙인다.
‘남색 누비’
‘검정 두루마기’
‘연두색 모시 저고리’
‘밤색 반두루막’
이도저도 아닐 때는 이름이 한참이나 길어지기도 한다.‘인사동에서 당신이 골라준 검은색 바지’ 우리들의 이름이라는 것이 주인 내외만이 부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을 것이나 주인 내외는 나들이 할 때면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이 되는걸 보면 재미있다.회사에서 나올 때 번듯한 이름이 있음에도 주인은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색깔별, 종류별, 계절별, 옷감의 특징을 적당히 버무려서 만들어내지만 입때껏 용케도 서로 잘 알아듣는다. 주인은 옷장을 세 칸을 쓰고 있는데 한 칸은 모시를 비롯한 봄 여름옷과 또 다른 한 칸은 가을 겨울옷, 그리고 나머지 한 칸은 양옷들이다.
주인이 몇 년 전 회사를 퇴직한 이후로 양복은 거의 입지 않고 있다가 이사를 오면서 그 수가 반이나 줄어들었다. 15-6년 전 쯤 주인과 처음 만났을 때 주인은 모시 한 벌과 명절 때나 주로 입었을 겨울옷 한 벌을 지니고 있어 치레용으로나 우리 옷을 입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를 만나고부터는 주인의 나들이벌이 점차로 바뀌어가더니 해가 갈수록 후배 녀석들이 내 앞뒤로 줄줄이 메달리기 시작했다. 옷감도 바뀌고 모양새도 점점 세련된 녀석들이 들어와 나는 조금은주눅이든채로 더욱 좁게 지내야 했다. 옷뿐이 아니라 가죽신, 철 별 모자에, 목도리에, 손가방까지 일습을 차리더니 어느샌가 입성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곱고 멋진 녀석이 새로 오더라도 나에 대한 주인의 사랑은 천하 없이 각별했다. 중요한 모임에는 내가 빠지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배래가 마치 초가집 같지 않냐며 나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팔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몇 년 전 왼소매 끝단이 헤졌을 때 나를 시샘한 녀석들은 내가 곧 아파트 경비실 옆 의류 수거함으로 갈 것이라고 수군거렸지만 주인은 나를 들고 친정에 가서 수리를 부탁했다. 첫정이라서 일까? 내가 워낙 고령인 탓에 거절 당하면 어쩌나하고 주인은 속으로 걱정을 했으나 담당 직원은 선뜻 나의 재생을 약속했다. 수리가 됐다는 전화를 받고 주인은 약속도 미루고 단숨에 달려왔다. 나는 거만해졌고 후배녀석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그 이후로 주인은 나를 입을 때면 시계를 차지 않는다. 내이름은 '쑥색저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