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내가느낀질경이] 신옥순님

작성자
질경이우리옷
작성일
2019-07-04 08:23
조회
597


[제2회 내가느낀질경이] 신옥순님

'질경이와 나'


◆ 관심 밖의 질경이 한적한 시골에서 자란 나의 주변에는 질경이가 참 많기도 했다. 햇살 가득한 강가나 논둑 밭둑 언저리며 골목길 담장 아래, 심지어는 뒷마당의 그늘진 곳에까지 말이다. 곱게 말린 풀꽃으로 정성들여 만든 책갈피를 소중한 이들과 나눠 갖는 것은 나의 작은 취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질경이로는 한 번도 책갈피를 만들고자 시도해 본 적이 없다. 꽃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외에도,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린 너무 흔한 존재라 아마 관심 밖의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거리를 걸을 때 가끔 만나기도 했던 ‘질경이’란 이름도 그냥 무심히 스쳐 지나치곤 했을 뿐이다.


◆ 또 다른 질경이와 만나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몇 번씩 큰 변화들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천직으로만 알고 열성을 다한 삼십 수년간의 교직 생활을 무사히 마감한 지금 평온하고 여유로운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에 또한 만족하고 있다. 조용한 성격을 가진 나는 평소 시간이 날 때마다 고궁에 들러 고즈넉한 정취를 즐기며 크고 작은 세상살이의 피로를 달래곤 했었다. 생활한복 ‘질경이’를 만나게 된 것은 그동안 바빠서 늘 마음에만 두고 있던 궁궐안내 자원봉사 활동을 퇴직한 후에 시작하면서 부터다. 봉사활동 시에 입을 한복을 고르기 위해 어느 날 하루 온종일 인사동 거리를 샅샅이 뒤지고 훑었다. 입어보고 또 입어보기를 거듭해도 색, 모양, 옷감의 삼요소를 충족시켜 주는 마음에 드는 옷은 찾을 수가 없었다. 모양이 괜찮으면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고, 색깔이 만족스러우면 이번엔 또 옷감이 불만이거나 아니면 입었을 때 움직임에 제한이 와서 편하지가 않았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오늘은 포기하고 다음에 다시 나와 보리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바로 가끔씩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갔던 그‘질경이’였다. 눈에 끌리는 한 벌을 골라 입어봤더니 아, 느낌이 달랐다. 생활한복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처음 입는 것이어서 조금은 불편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늘상 입어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고도 편안했다. 우리 멋을 살린 채 기능성과 활동성을 효과적으로 가미하였으며, 고전적이면서도 너무 고지식하지 만도 않은 맵시와 색깔, 섬세한 바느질과 부드럽고 따스한 천의 질감까지, 거기다가 더욱 중요한 건 권유해 주시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눈으로 봐도 질경이와 나는 썩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저 관심 없이 스쳐 지나치기만 했었던 질경이를 이렇게 만족감을 갖고 입게 되다니……. 남들이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가끔씩 부러운 듯 지켜 본 적은 있었으나 내가 직접 이렇게 우아한 모습으로 입을 수 있게 되다니……. 내 머릿속에 새겨져 있던 질경이의 가치가 순식간에 바뀌고 있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경직된 옷만 입어왔던 나로서는 마치 떠돌이가 드디어 고향을 찾은 것처럼 편하고 포근하며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 눈에 질경이에게 매료되었고 앞으로 어쩐지 서로 친해지게 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슬며시 밀려왔다.

◆ 내가 사로잡힌 질경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면서 질경이와 나는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어갔다. 처음 한복을 입었을 때는 남의 시선을 받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이제는 전철 안이나 거리를 걸을 때도 별 부담이 없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거나 행사 모임, 공연장, 음악회에 갈 때도 질경이와 함께 하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들 눈길 앞에서의 기품 있는 옷매무 새와 가지런한 언행이 일상생활의 습관으로 점점 굳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은 질경이로부터 얻어진 대단한 이로움이다.

예감대로 나와 질경이는 서로 의지하며 점점 더 다정한 짝이 되어가고 있다. 궁궐을 찾는 관람객들로부터 한복의 자태가 아름답다는 찬사를 들을 때마다 친절함과 자상함으로 더욱 알차게 봉사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즐거운 마음으로 소임을 다할 때마다 누리게 되는 이 가슴 뿌듯한 보람도 질경이와 함께해서 더 크게 느껴진다. 요즘에는 엔화의 강세 때문인지 인사동 거리에 일본 관광객들이 한결 많아졌다.

며칠 전 한복 차림으로 거리를 걷던 중 골목골목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작은 소품들을 고르기도 하는 일본 관광객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는데,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느 샌가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둘러싸여 구경을 당한 적이 있었다. 질경이가 한껏 표현한 한복의, 아니 한국의 미가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듯해서 구경거리가 되었음에도 싫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버릇처럼 ‘질경이’에 들른다. 볼일을 보다가 목이 마를 때나 약속 시간이 맞지 않아 남은 시간을 메워야 할 경우에도 말이다.

그 때마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겨주는 분위기가 좋고, 삶의 이런저런 수다들을 지긋이 들어주는 정스러움도 좋다. 나는 우리 궁궐을 지키고 ‘질경이’는 우리 옷을 지켜가고……. 우리 문화 사랑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질경이’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질경이는 언제나 편안함으로, 자연스러움으로, 아름다움으로 나를 잡는다. 내 친구 질경이는 늘 다소곳한 맵시로, 따사로운 색으로, 친밀스런 옷감으로 나를 압도해 버린다. 꼼짝하지 못하는 나. 이미 사로잡혀 버린 나. 그리고 이젠 어쩔 수 없는 나의 그대.

질 경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