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내가느낀질경이] 배소정님 - 최우수상

작성자
질경이우리옷
작성일
2019-07-04 08:37
조회
1568


[제3회 내가느낀질경이] 배소정님 : 최우수상


질경이 하고 발음하면 웬지 입안에서 무엇인가가 질경질경 씹히는 것 같다.
씹고 씹어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고무줄만큼이나 질긴 생명력을 느끼는 그런 단어다. 그래서 무심하게 지나쳤는지도 모를 지천에 널린 질경이. 수 없이 발에 밟히고도 끈끈하게 이어온 그 수많은 시간들을 기억에서 삭제하듯 무관심으로 살아온 우리들, 화사하지도 못한 좁쌀만한 꽃송이로 땅바닥에 납작 업드린 채 있는 듯 없는 듯 그러헥 우리의 시선 밖에서 머물러온 질경이. 그러나 질경이하고 이름을 부르면 문득 가슴 저 밑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는 이름이다.
난 오늘 질경이의 눈부신 변화를 생명력을 내 몸으로 느껴보는 행운을 얻었다. 화사하지 않아도 슬그머니 기대고 싶은 정감이 가는 우리옷 질경이를 발견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할 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수고스러움을 잊을 만한 발견이었다. 내가 먼저 슬그머니 손 내민 우리 옷 질경이, 한복은 입기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던 내 머릿속의 기억을 툭 털어내고 색과 멋의 수수함을 아우른 옷. 화려하지 않아도 단아하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옷. 노인도, 아이도 나름대로 멋을 풍기는 , 나이를 초월한 옷이다.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한 여인이 나를 본다. 우리 옷 질경이를 입고 화사한 미소로 나를 유혹한다. 정승댁 귀부인처럼, 이웃집 아줌마처럼, 아니 내 어머니처럼 웃는다.

“그래, 오늘 등교는 이 옷을 입고 가는 거야”
늦깍이 대학생의 용기에 우리 옷 질경이를 입혔다. 자식같은 어린 동급생들이 우르르 주위로 몰려와 양장보다 더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 한다. 그게 거짓이든 참이든 즐겁다. 혀 쥐나게 하던 온갖 이름의 양장 패션으로 오늘은 또 우리옷이 어울리지 고민을 떠안던 날들이 멀쑥해진다.
“그 옷 어디서 사요?”
“얼마에요?”
“편해요?”
양장과 청바지에 길들여진 동급생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오늘따라 더 초롱초롱 하다. 처음으로 우리옷 질경이를 입고 학교에 등교한 날 나는 미스코리아나 된 듯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몇몇을 대동한 채 교정을 활보하며 돌아다녔다
질경이가 지천에 돋아나기 시작하는 4월. 뭇시선들이 종일 내몸에 꽂히는 하루였다. 옷보다 내 몸이 더 가벼워져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봄날이었다.
“우리 것이 좋은겨”
바람 속에 봄빛의 향기가 천지를 진동하는 그런 날이었다.